4개월이라는 시간은, 그 어떤 문장에도 마침표를 찍기에는 짧았다. 온보딩, 오프보딩 각 2주씩을 제외하면 3개월, 고작 한 계절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의 1년은 마치 개의 나이와도 같다고, 어느 동료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이 한 계절은 어떤 의미였을까.
주니어에게 커뮤니케이션이란 질문하는 것
나에게 남은 가장 큰 질문을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 회사는 풀 리모트 근무가 가능하고, 코로나 시기이기에 더욱 재택 근무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또한, 코즈에서 구성원에게 가장 강조하는 역량은 다름 아닌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는 것이 뭘까. COO와의 면접에서 “동료를 배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을 잘 못하는 동료와 일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동료와 일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등의 질문들을 받았다. 모두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리라.
주니어에게 커뮤니케이션이란 “잘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에는 “자주", “정확히", “구체적으로" 등의 의미가 포함될 것이다.
실제로 아고라 스테이츠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질문을 만났을 때 나는 종종 슬랙 채널에 도움을 구했다. 혹시라도 필요한 누군가가 보고 참고할 수 있기에 DM보다는 공개 채널에 질문을 올렸다.
서면으로 질문하는 일은 구두보다 품이 훨씬 많이 든다. 두괄식으로 질문하고, 가독성을 고려해서 핵심을 잘 정리해야 하며, 내가 시도해본 것들과 이해하지 못한 지점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도를 해야하고, 그 시도를 빠르게 회고할 줄 알아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쌍방이다. 바쁜 동료들은 “이거 한 번 살펴보세요"라며 레퍼런스 링크를 주거나 “이 부분이 문제 같은데요.”라며 키워드를 하나 던져주고 갈 뿐이다. 당연하다. 그들의 이해 수준은 나와 다르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나지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추가 질문을 하거나, 그 레퍼런스 혹은 키워드를 들고 다시 씨름을 하거나, 둘 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의 한계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록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그 문제는 누군가가 나만큼의 리소스를 들여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거나, 아예 다른 사람이 떠맡거나 해야 한다(물론 시간을 버는 옵션이 있긴 하지만 논외로 하겠다). 여기서 내가 그나마 쉬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는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 즉 “질문"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질문을 잘하게 되었느냐고? 잘 모르겠다. 여전히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질문을 잘하는 것의 중요성만큼은 절실히 알았다. 4개월 동안의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배움은 훔쳐먹는 것”
”배움은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고 내가 훔쳐먹는 것이다” 라는 김태리 배우의 수상 소감을 인상 깊게 들었다. 정말로 그렇다. CSE를 누구에게나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코딩 실력이 급성장했냐면 그건 아니다. Java를 배운 것, 값지고 귀한 경험이었지만 가이드만 있었을 뿐이다. 거의 부트캠프와 다를 바 없었다(물론 중간에 사랑하고 존경하는 시니어님이 와주셔서 숨통 트인 것은 사실).
내가 배운 건 개발자로서의 실무에 대한 것들보다는 사실 “스타트업에서 살아남는 법”에 가까웠고, 이건 거의 물에 빠뜨려놓으면 뜨기 위해 팔다리 허우적대는 것과 비슷해서 뭐라 소감 적기에도 멋쩍은 것들이다. 알고리즘, CS 지식은 오히려 퇴보했다고 생각한다(물론 회사의 문제라기보단 내가 일만 하느라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 그런데 결국 이직은 내가 “훔쳐먹은 것들"로 했다고 생각한다. 이 “살아남는 법"에 관한 것들로. 아이러니컬하다.
코즈에 개발자로 남을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이제는 사수가 있는 조직에서 성장하고 싶어서였다. “배움은 훔쳐먹는 것"이라는 생각엔 동의하지만, 틀린 방향으로 한참동안 가지 않게끔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사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클 것 같다.
당분간은 기본기를 다지고 싶다. 개발자로서의 기본기라 함은 역시 CS 지식, 알고리즘, 하나의 언어를 깊게 파보는 것이겠지. 새 직장에서도 질문을 잘하기 위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와 함께 고독하겠지. 더 잘 훔쳐먹고자 애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간 관계가 망하면 됩니다(웃음). (0) | 2022.07.17 |
|---|---|
| 코드스테이츠 CSE 1주차 회고 (0) | 2022.02.03 |
| 코드스테이츠 (1달 반만의) 13주차 회고 (0) | 2021.10.23 |
| 코드스테이츠 section2 회고 (0) | 2021.08.30 |
| 코드스테이츠 11주차 회고 (0) | 2021.08.28 |